작업노트
백범영
천렵(川獵)은 꽤 즐거운 일이다. 첨벙첨벙 물을 튀기며 고기를 쫓아 모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자 유희(遊戱)이다. 그러나 물속을 아무리 뛰어다녀도 물고기는 생각처럼 쉽사리 잡혀주지 않는다. 물의 저항을 의식하지 못한 채 한바탕 즐거움이 끝나고 요기를 하고 나면 모두 몸이 풀린다.
그림은 인간의 본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생존의, 생존에 의한, 생존을 위한 유희는 인간의 본능이다. 문명세계에서도 그림은 생존을 통한 유희이다. 아무리 별다른 의미부여를 해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림은 여하한 존재의 것이 아니라 오직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를 위한 것이다.
산을 왜 그리는가.
산(山)은 솟은 땅덩어리이다. 산의 형상은 밑바닥의 넓이가 필요하다. 산에는 높이가 있다. 산이 솟으면 골의 깊이가 생긴다. 산은 높이와 체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탕과 산과 산 사이의 공간이 있다. 산이 높을수록 골짜기가 깊다. 평지에서는 높이로만 보이는 것이 산에 올라보면 그제야 오름의 수고로움과 비어있는 골짜기의 깊이를 의식한다. 드넓은 공간을 보고 허무를 느낀다. 높이를 체험하고 허공을 느끼는 것이 산을 오르는 목적일 것이다. 평지에서 사는 사람들이 산을 바라보고 산을 의식하는 것은 곧 나를 생각하는 것이다.
산은 내가 존재함으로써 산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산이 있어서 내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어서 산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걸으므로 산의 형상과 기운이 있고, 내가 사고함으로써 산이 그리움과 마음의 고향이 되는 것이다. 산의 신령스러움도 내가 의식하는 것이고, 산에 대한 경외(敬畏)도 내가 느끼는 것이다. 산을 대하는 내가 없으면 산은 다만 ‘높이 솟은 땅덩어리’에 불과하다.
산은 곧 자연의 상징이다. 광활한 공간과 유구한 시간의 흔적이 산이라는 형상에 담겨 있다. 솟고 깎이고 파이고 쌓인 세월의 침전(沈澱)이 산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공간적인 땅의 시간적인 변화가 자연현상이다. 그 결과가 산의 모양과 생태에 간직되어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살아가는 것이다. 신령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느낌이 강하면 몸짓으로 터져 나온다. 시로, 노래로, 그림으로….
산은 산만으로 산이 아니다. 그 속에 깃들은 모든 자원과 생태가 다 산을 이룬다. 산에 뿌리를 내린 돌ㆍ나무ㆍ풀ㆍ꽃은 물론이고, 물ㆍ안개ㆍ바람ㆍ향기ㆍ소리 등 유ㆍ무형의 것들이 모두 산의 부속물이자 원소이다.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포유류ㆍ조류ㆍ어류ㆍ파충류와 수많은 곤충류 등의 먹이사슬도 마찬가지이다. 산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이 산이라는 하나의 상징으로 통섭(統攝)되는 것이다.
산에는 길이 있다. 길은 사람이 다니는 것이다. 그 길을 사람이 걸음으로써 ‘솟은 땅덩어리’가 산으로 완성된다. 산에 다가가서 만지고 껴안고 더듬고 부비고 산의 체온과 체취를 느끼면서 사람은 점점 산과 하나가 된다. 사람이 산을 탄생시켰지만 그 속에 이미 사람이 들어있다. 결국 산과 사람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산이 곧 사람의 모습이고 사람은 산의 성정(性情)이다.
자연이 산이고 산이 사람이고 사람이 그림이다. 그림은 자연이다. 자연이 곧 그림이다. 못난 사람들이 잘난 체 하면서 그것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물을 튀기며 물고기를 쫓고 있다. |